오래된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중세의 어느 건축 현장에 세 명의 석공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냐" 는 물음에 첫 번째 석공은 "돌을 깎고 있다"고 답했고, 두 번째는 "먹고살려고 일한다"고 했어요. 세 번째 석공만 이렇게 답했습니다.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같은 돌을 깎아도 누군가는 돌만 보고, 누군가는 성당을 봅니다. 자비스앤빌런즈가 일하는 방식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모두가 세 번째 석공처럼 일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왜 그게 중요할까요? 저희가 하는 일에는 정해진 답이 거의 없거든요. 자비스앤빌런즈는 정해진 일을 효율적으로 반복하는 조직이 아니라, 없던 시장을 만들고 해본 적 없는 문제를 계속 풀어야 하는 조직입니다. 이런 일은 위에서 목표를 내려주고 시키는 대로 해서는 성과가 나지 않아요.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스스로 방향을 세우는 사람이 성과를 냅니다.

그래서 저희에게는 '구성원이 스스로 방향을 세운다'는 철학이 먼저 있고, 그 철학을 실제로 굴러가게 하는 도구로 OKR을 씁니다. 순서가 반대예요. OKR을 잘하려고 이런 문화를 만든 게 아니라, 이렇게 일하고 싶어서 OKR이라는 도구를 고른 거죠.

이 글은 그 이야기예요. OKR 작성법이 아니라, 저희가 어떤 철학으로 일하는 조직이고 그 철학이 OKR 안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OKR이 대체 뭔가요?

그 전에, 저희가 쓰는 도구를 잠깐만 소개할게요. OKR은 Objectives(목표)와 Key Results(핵심결과)의 약자예요. 여기에 Initiatives(실행과제)를 더하면 세 가지가 한 줄로 이어집니다.

여행에 빗대면 이해가 쉬워요. Objective는 목적지입니다. "제주도에 간다"처럼 방향과 의미가 담겨 있고, 읽었을 때 가슴이 뛰어야 해요. Key Results는 이정표예요. "부산을 지났나? 대구를 지났나?"처럼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숫자로 확인하게 해줍니다. Initiatives는 실제 행동이고요. KTX를 예약하고 숙소를 잡는 일이죠.

여기서 저희가 가장 신경 쓰는 지점이 하나 있어요. Key Results는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그 일이 만들어낸 변화'여야 한다는 거예요. "고객 인터뷰를 10번 진행했다"는 한 일이고, "고객이 다시 찾아온다"는 변화예요. 저희는 늘 후자를 목표로 잡으려 합니다. 활동은 얼마든지 바쁘게 할 수 있지만, 바쁜 것과 나아가는 건 다르니까요.

저희는 성과를 '관리'하지 않고 '경영'합니다

앞에서 '스스로 방향을 세운다'고 했는데, 이걸 성과를 다루는 방식으로 옮기면 두 가지 태도가 갈립니다.

하나는 성과관리예요. 위에서 목표를 내려주고, 달성했는지 지켜보고, 잘하면 보상하고 못하면 불이익을 줍니다. 정해진 절차를 지키는 게 중요하고, 실패는 피해야 할 일이에요. 답이 정해진 일을 효율적으로 반복할 때는 잘 맞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과경영입니다. 목표를 리더와 구성원이 함께 세우고, 스스로 책임지고 방법을 정해요. 동기는 보상이 아니라 일의 의미와 성장에서 나오고, 실패는 피해야 할 게 아니라 배움의 기회예요.

그래서 저희는 1년짜리 계획을 세워두고 연말에 채점하지 않아요. 짧은 주기로 계속 다시 묻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지?" 이 다음부터는, 그 선택이 저희 일상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자비스앤빌런즈가 지키는 세 가지 원칙

저희가 OKR을 운영하면서 지키는 원칙은 세 가지예요.

첫째, 숫자보다 방향이 중요해요.
지표는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도구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숫자를 채우려고 방향을 잃는 일은 하지 않아요. 재방문율을 올리려다 정작 고객이 원하지 않는 기능을 밀어붙이는 건, 숫자로는 성공처럼 보여도 저희 기준에선 실패예요.


둘째, 자비스만의 OKR을 만들어요.
OKR을 다룬 책은 많고, 저마다 '올바른 형식'을 말합니다. 저희는 그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요. 구글 시트든 발표 자료든 위키 문서든, 팀이 편한 포맷으로 자유롭게 씁니다. 형식을 지키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게 목적이니까요.


셋째, OKR은 리더 혼자 쓰는 문서가 아니에요.
리더가 목표를 써서 내려보내면 그건 지시서지 OKR이 아닙니다. 저희의 OKR은 구성원이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합의해서 만드는 결과물이에요. 리더의 역할은 그 논의가 전사 방향과 어긋나지 않게 정렬하는 거고요.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도 없어요. 거칠게 시작해서 함께 다듬어가는 과정 자체가 OKR입니다.

목표를 못 이루면 어떻게 하냐고요?

OKR을 처음 접한 분들이 가장 낯설어하는 지점이 있어요. 저희는 목표의 60~70%만 이뤄도 잘한 것으로 봅니다. 100% 달성했다면 오히려 목표가 너무 쉬웠다는 신호로 읽어요.

이게 가능하려면 전제가 하나 필요해요. OKR 달성률을 개인 평가·보상과 곧바로 연결하지 않는 겁니다. 만약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확실히 이룰 수 있는 쉬운 목표만 세우고, 실패가 두려워 도전적인 시도를 하지 않게 돼요. 숫자에 매달리다 방향을 잃고, 팀원끼리 경쟁하느라 협업이 줄어들고요. 저희가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조직이 됩니다.

그래서 목표를 못 이뤘을 때 저희가 던지는 질문은 "누구 책임이냐"가 아니에요. 세 가지를 묻습니다. 왜 이루지 못했나.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나. 다음엔 어떻게 할까. 달성 여부보다 이 과정에서 얻은 배움이 다음 반기를 더 날카롭게 만들어요.

실패를 탓하지 않고 "무엇을 배웠어요?"를 묻는 조직에서만, 사람들은 안심하고 어려운 목표에 도전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함께 맞춰가나요?

저희 OKR은 전사에 공개돼요. 다른 팀이 지금 무엇을 향해 달리는지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목표가 닫혀 있으면 팀끼리 경쟁하게 되지만, 열려 있으면 공동의 목표가 생겨요. 내 일이 전체 그림의 어디쯤 놓여 있는지 보이면, 부서 이기주의가 줄고 협업이 늘어납니다.

정기적으로 빌런즈 전체가 모이는 자리도 있어요. 이 자리의 성격이 중요한데, 여기는 "우리가 지난 기간에 무슨 일을 했다"고 보고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 어디까지 왔고, 무엇이 막혀 있나"를 이야기하는 자리예요. 한 일을 나열하면 보고가 되고, 막힌 지점을 꺼내놓으면 서로 도울 수 있는 협업이 됩니다.

이 모든 걸 지탱하는 건 결국 일상의 대화예요. 목표와 진행 상황을 자주 이야기하고,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 피드백을 주고받고, 기여에 대해 제대로 인정하는 것. 거창한 제도보다 이 세 가지가 문화의 기본기입니다.

자비스앤빌런즈에서는 모두가 성당을 짓고 있어요.

자비스앤빌런즈의 OKR은 숫자를 관리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기 위한 장치. 리더의 지시서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합의. 실패를 벌하는 잣대가 아니라 배움을 쌓는 방식이에요.

이런 방식이 모두에게 맞지는 않아요. 명확한 지시를 받아 그대로 해내는 편이 편한 분에게는 오히려 피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빌런즈들은 스스로 방향을 세우고, 어려운 문제에 베팅하고, 실패에서 배우는 걸 즐기면서 —돌이 아니라 성당을 보면서—  더 빠르게 성장하고 성과를 내고 있어요.

오늘도 빌런즈들은 동료들과 함께 멋진 성당을 짓고 있답니다.



글 | 오찬명
디자인 | 조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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