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전직원에게 휴양지 원격근무를 적극 권장하는 이유

자비스앤빌런즈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워케이션을 실시한다. 이는 6월~8월 사이 최대 한 달간 휴양지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며 일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근무 방식이다. 간단히 줄여서 ‘휴가지 원격근무'라고도 한다.

주변에 워케이션 간다는 소식을 알리면, “휴양지에서 일하는 데 월급도 주는 회사라니 부럽다”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유급 휴가 며칠 더 받아서 확실히 쉬고 오는 게 더 낫지, 휴양지까지 가서 일하고 싶지는 않다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꽤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을 두고 일에 집중이 되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이 역시 존재했다.

이런 ‘의문투성이’인 워케이션을 회사가 마련한 이유를 설명하려면 ‘5월의 삼쩜삼’을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이 관점을 녹여서 재정의한 워케이션은 ‘상반기에 강도 높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다 써버린 에너지를 충분히 재충전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는 5월 직후 워케이션을 시행하는 이유에 대한 답일 뿐, 앞서 제기된 그 어떤 의문 하나 해소하지 못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번 글에서는 자비스앤빌런즈가 워케이션을 시행하는 이유와 자율 출근제 및 휴가와의 차이를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워케이션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였다

종합소득세 신고는 국세청 홈택스를 통해 연중 언제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5월 정기 신고를 놓치면, 신고∙납부불성실가산세 등 정기 신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낼 수도 있다. 그래서 직장인의 연말정산 기간인 1월과 5월에 전국민적 관심이 홈택스에 쏠린다.

‘간편’하고∙‘안전’한∙최대’ 환급이 가능한 삼쩜삼으로도 종합소득세 및 신고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5월에 대거 몰려든다. 그 결과, 올해 역대 최고치를 달성하며 지난해 기록을 경신했다. 2022년 4월 말 2,619억 원이었던 누적 신고환급액은 5월 한 달 사이 1.86배나 증가한 4,892억 원이 됐다. 지난 반년간 월간 증가액이 최대 25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5월에 평소 수치 대비 10배 더 많은 환급 신청이 이뤄진 셈이다. 같은 기간 방문자 수(트래픽) 역시 2배가량 성장한 1,420만 명에 이른다.


[ 이미지 1 ] 2022년 상반기 월별 누적 신고환급액과 지난 2년간 반기별 방문자수를 나타낸 그래프

이처럼 1년 중 가장 많은 고객과 가장 많은 환급 신청이 이뤄지는 5월을 빌드업해나가는 상반기에는 업무량이 최정점을 찍는다. 서비스 오류가 주말과 휴일을 피해 정규 근무 시간에만 발생하고, 오류가 수정될 때까지 고객이 기다려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이유로 주말 출근도 해야만 하는 사람도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앞만 보고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다가는 금세 지쳐서 나가떨어지기에 십상이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부모님이나 배우자,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마저 부족할 정도로 일만 했으니, 재만 남는 상황(번아웃)에 이르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런 이유로 5월이 끝나고 나면 개인의 삶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게 일단 쉬고 보자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모든 임직원이 1주일간 동시 휴가를 가는 안이 최초 제안됐다. 하지만 수개월간 고생한 것에 비하면 1주일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섰다. 또한 모두가 일에서 손을 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상 징후를 발견할 ‘최소한의 인력’ 배치는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이 아닌 제주도에서 쉬면서 일도 하는 워크샵을 진행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역시 한계가 있었다. 하루 이틀이야 배우자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다고 쳐도, 어린 자녀를 두고 장기간 집을 비우는 게 어렵다며 난색을 보인 이들이 꽤 많았다.

이에 ‘한날한시에 같은 곳으로 떠내자'라는 제약을 없앴다. ‘다 같이’를 ‘각자’로, ‘제주도’를 ‘원하는 곳 어디나’로 바꾼 셈이다. 그 결과, ‘6월’에 ‘집과 사무실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숨 가쁘게 달려온 상반기를 잘 마무리하고, 하반기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하기 전 숨 고르기를 해보자’라는 컨셉이 도출됐다.

마치 프로 운동선수가 비시즌(워케이션)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내년 시즌(5월)을 대비하듯이, 자비스앤빌런즈 또한 연간 업무 주기에서 꼭 필요한 단계라고 인식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처음 도입한 워케이션은 6월 한 달 사이 최장 3주간 허용됐다. 다만 정기 신고 기간 이후 환급금 입금 문의 대응 등 운영팀을 포함한 일부 팀은 6월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올해는 일부 내용을 변경했다. 팀 또는 개인의 사정도 고려해 일정을 짤 수 있도록 워케이션 시행 기간도 최대 8월까지 연장했다. 더 제대로, 더 충분히 에너지를 재충전하자는 의미에서 워케이션 기간을 한 주 더 늘렸다.

“상반기에는 모두가 무리할 정도로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6월이 되어서도 ‘모두 힘내서 다시 달려봅시다’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일단 저부터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꼈죠. 5월을 함께 보낸 모든 이가 에너지를 충분히 회복할 시간부터 먼저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에너지는 계속 고갈될 테고, 그러면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테니까요.”

“격려 차원의 휴가를 며칠 더 주고 알아서 쉬라는 방법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달리는 모드’인 와중에 편히 휴가를 다녀올 수 있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이런 식으로는 구성원이 가진 에너지 평균을 상반기 이전 수준으로 돌리기가 어렵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 ‘일에 대한 부담은 줄이고 충분히 쉬어 보자’는 걸 적극적으로 장려해보고자 워케이션을 마련했습니다.”

“아예 걱정이 없었다면 새하얀 거짓말이겠죠. 사람들이 워케이션 갔다가 다시 회사에 돌아오기는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잦은 부재로 일 진행이 척척 안 되면 어쩌지, 워케이션이 일의 능률을 높이기는커녕 허탈감을 낳는 건 아닌지 등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워케이션이 무조건 좋다,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어도, 단점을 상쇄하는 장점이 더 많다고 봤어요.”

[ 이미지 2] 범섭님이 지난해 5월 회사 임직원에게 쓴 편지 일부 내용 발췌

"자율 출근제하고 어떻게 달라요?"

자비스앤빌런즈는 코로나 팬데믹 훨씬 이전부터 자율 출근제를 시행해왔다. 본인의 컨디션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몰입에 적합한 장소(집, 사무실)를 선택해 그곳에서 자유롭게 일하면 된다. 어디서 일하느냐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경험과 경영진의 판단이 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집과 사무실이 아닌, 조금 더 먼 곳에서 일하는 것뿐인 워케이션과 자율 출근제의 차이를 단번에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일하는 곳이 집이냐, 아니면 집 이외의 제2의 장소인지는 원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줌(Zoom)이나 구글 밋(Google Meet), 슬랙 허들(Slack Huddle) 등을 통해 원격 미팅에 참석하고 슬랙 채널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기만 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율 출근제는 ‘사무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는 ‘집에서만 일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즉, 앞서 언급한 ‘몰입할 장소’의 대전제는 ‘필요에 따라서는 사무실 출근이 즉시 가능한 거리에 있는 장소’인 셈이다. 그래서 업체 미팅 등의 이유로 사무실로 반드시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저 지금 미국에서 재택근무 중이라 못가요’는 용인되지는 않는다.

워케이션은 다르다. ‘저 지금 미국에 있으니 원격으로 참여할게요’라고 해도 된다. 최대 한 달간은 집에만 있어도 좋고, 고향 부모님 집,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해도 무방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자비스앤빌런즈의 워케이션은 ‘사무실 출근이 필요한 상황을 가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 출근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 회사가 자율 출근제를 하고 있으니까, 부모님이 계신 대구 고향 집에 내려가서 일해도 상관은 없겠죠. 하지만 그렇게 일하다가 예상치도 못한 이유로 회사에 갑자기 나가야만 할 때가 생기면 어쩌나 싶더라고요. 대구에 내려와 있으니 사무실은 못 간다, 그런 말을 편하게 할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워케이션 때는 이런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본가에서 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이미지 3 ] 자율 출근제와 워케이션의 차이

앞서 설명한 대로, 6월에는 상반기 업무를 재점검하고 하반기에 새롭게 도전해볼 프로젝트를 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서 반드시 해야 하는 팀 과업 역시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전사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거나 프로젝트의 방향을 크게 변경하지 않는다는 대전제를 깔아둔 덕분이다.

이처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업무 비중이 늘어난 만큼, 워케이션에서는 ‘근무 장소’뿐만 아니라 ‘근무 시간’ 역시 좀 더 유연하게 배치할 수 있다. 통상적인 업무 시간대를 고려해보자는 조건을 완화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애초에 시차가 발생하는 해외 워케이션을 막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추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범섭님은 자율 출근제와는 다른 형태로 일할 수 있는 워케이션을 두고 ‘시간을 가르고 공간을 가르는 축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제주도로 한 달 워케이션을 다녀왔어요. 아침 8시부터 문을 여는 협재 쪽 스타벅스에서 일을 시작했죠. 하루 4시간에서 6시간 정도 일하고 난 오후에는 시간 단위로 연차를 써서 가족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녔어요. 물론 저 혼자 왔다면 이렇게 즉흥적으로 휴가를 내진 못했을 거예요. 누군가로부터 요청받은 업무를 기한 내로 처리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앞만 보고 내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한시적으로 조성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습니다.”

“유럽이랑 한국 간 시차가 대략 7시간 정도 나니까, 여기에서의 아침은 한국에서 동료들이 많이 일하는 오후에요. 그래서 오전에 일어나자마자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여러 직무의 동료와 함께하는 일을 처리하고 나서 오후에 이곳저곳을 둘러보죠. 한국 시각으로 새벽인 저녁에 다시 숙소로 와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요. 밤에 가게들이 다 문 닫으니까 어차피 할 일도 없기도 하고, 저녁 8시가 넘도록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마치 오후에 일하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휴가랑 뭐가 달라요?"

1박 2일 가는 휴가에서조차 업무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힘들다. 그 일을 처리할 사람이 본인밖에 없어서일 수도 있고, 그 일에서 프로 의식을 느껴서일 수도 있다. 1주일 이상 자리를 비우는 장기 휴가에서는 복귀해서 처리할 업무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휴가 도중에 일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처럼 휴가 중의 업무 팔로업은 개인의 책임과 프로 정신을 요구하며 쉴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온전한 휴식’이라는 가치를 대놓고 훼손하는 격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는 휴가 도중에 간단한 업무를 보는 워케이션은 꽤 합리적인 접근이라 볼 수 있겠다. 휴가지에서 일을 처리하는 데 쓴 시간을 공식적인 업무 시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득이하게 1시간 정도 일해야 한다면, 6.5시간을 연차로 내고 1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등록하면 된다[1]. 일할 땐 일하고(근무 시간), 쉴 땐 쉴 수 있는(연차) 워케이션은 쉴 권리의 침해가 아닌 쉴 권리의 보호라고 볼 수 있겠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메일과 메시지, 업무 등 복귀 후 처리해야 할 업무에 큰 부담을 느꼈어요. 그런데 워케이션 기간에는 휴식 중간에 일하고, 일 중간에 휴식을 취하고 있죠. ‘주’가 무엇이냐에 따라 개념적 접근이 비록 다를 수는 있어도 핵심은 하나에요. 공식적인 업무 시간을 할애해 업무가 밀리지 않도록 처리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워케이션 종료 후, 마치 어제도 사무실 출근을 했던 것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저는 휴가 중심의 2주 남해 워케이션을 다녀왔습니다. 그 사이 12시간(4시간 반일 근무*3일)을 일했으니까, 업무와 휴가 비중은 5.67:1입니다. 협업해야 할 동료 역시 비슷한 시기에 휴가 위주 워케이션을 가서 협업은 어렵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회의나 이슈 파악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미리 등록해두었습니다.”

여행은 보통 주말이 껴 있는 휴가로 짧게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 번 간 김에 없는 체력을 다 끌어올려 무리하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되레 여행 전보다 에너지가 떨어질 확률이 높다. 온종일 숙소에서만 머무르며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컨셉으로 지내고 오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체내로 흡수되고 남은 비타민이 소변에서 배출되듯이, 하루 최대 에너지 회복량이 정해져 있다. 며칠에 걸쳐 소진한 에너지가 며칠 쉰다고 바로 회복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쉽게 털어낼 수 있었다면 대한민국 직장인이 번아웃과 친구를 하지는 않았을 터다.

이럴 때는 업무 도중에 휴식을 즐기는 관점으로 워케이션을 바라보는 게 꽤나 합리적이다. 일하기 전 또는 일 중간에, 일을 마치고 나서 하루치 최대 회복량까지만 ‘휴식’을 즐기는 게 핵심이다. 굳이 비교해보자면, 짧은 휴가는 30개의 초콜릿을 단 며칠 만에 먹어 치우느라 그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면, 업무 중심의 워케이션은 매일 하루에 한 개씩 초콜릿의 맛과 향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과 같다.

“일을 시작하기 전인 오전에, 점심때, 일을 다 마치고 난 저녁에 바닷가를 거닐 수 있어서 좋았어요. 물론 한국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일했어도 비슷한 느낌은 났을 거예요. 하지만 남들 장기 휴가를 내야 겨우 올 수 있는 호주라서 좀 더 특별했어요. 책상 앞 창문이 액자라 해도 믿을 정도로 멋진 광경이 언제, 어디나 펼쳐져 있었거든요. 예쁜 경치를 보며 일하는 제 로망을 드디어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무 장소 선택지가 집과 사무실, 휴양지라고 하자면, 확실히 휴양지는 몰입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다. 언제 다시 와볼지 모르는 천하절경을 옆에 두고 일에 전념할 수 있을까?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술에 굴비 한 번 쳐다보는 괴이한 식사법처럼 눈앞의 놀거리를 두고 일해야 하는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자비스앤빌런즈는 3월부터 6월까지 휴일에도 근무할 정도로 숨고를 틈 없이 바빴던 이들에게 부여된 특별 휴가 사용을 장려해,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쉴 수 있도록 했다. 매년 부과되는 연차보다 더 많은 휴가를 받은 이들은 현지 사정에 따라 계획되지 않는 반차나 1일 연차를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아예 2, 3주간 장기 휴가를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서로가 업무적으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기간이라서 가능한 부분이었다.

“케언즈에서 1주일, 시드니에서 1주일 이렇게 총 2주간 호주에서 워케이션했어요. 케언즈에서는 7:3의 비율로 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 원래 종일 업무를 계획했으나 휴식을 좀 취해야겠다 싶어서, 예정에 없던 연차도 내서 쉬었고요. 반면, 운영팀 동료인 승희님과 진아님이 합류하는 시드니에서는 3:7의 비율로 휴가를 더 많이 썼습니다. 함께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거든요. 남은 연차가 하나도 없었더라도 만족했을 거예요. 무려 호주에 올 수 있었으니까요!”

“아직 나 홀로 해외여행은 낯설고 두려워요. 그래서 친구랑 시간을 맞춰서 3박 4일간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왔어요. 아쉽기는 해도 워케이션이 시행되는 기간에 자유롭게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도 큰 보상이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마케팅 캠페인 실행을 최소화되어서 일정 자유도가 높았어요. 덕분에 쉬고 싶을 땐 특별 휴가나 연차를 써서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이를 종합해보자면, ‘휴가 도중에 근무하기’, ‘휴가 중에 근무하기’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 방식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핵심은, 워케이션에서는 일과 재충전, 두 마리 토끼를 정당하게 잡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워케이션 안가는 사람은요?"

‘대면 미팅’이 필요하지 않은 날에도 사무실 출근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 시간과 휴식을 취하는 공간인 만큼, 집에서는 업무 모드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가 주된 이유였다. 같은 이유로 휴양지 근무에서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휴가만 짧게 며칠 즐기고 오는 경우가 꽤 많았다.

어린 자녀를 둔 동료 집단에서는 워케이션을 가지 않는 비율이 더 높다는 점도 포착됐다. 육아는 공동의 일이다. 워케이션을 혼자 간다면 육아는 집에 홀로 남아 있는 배우자가 부담해야 한다. 함께 워케이션을 간다고 해도 문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같은 보육 기관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동료가 일하는 동안 상대 배우자가 온종일 아이를 돌봐야 한다.

비단 육아 때문은 아니더라도, 여행길에 오르는 마음가짐에 대한 입장차도 컸다. 우선 회사를 오랫동안 비울 수 없는 상대와 일정을 맞추는 일부터가 난관이었다. 겨우 날짜 맞춰 휴가를 내서 함께 여행길에 오른 상대방에게 일을 기어코 하겠다는 주장을 밀어붙이기가 힘든 부분도 있었다.

“작년 4월에 입사해서 워케이션 갈 기회가 두 번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휴가를 낸 아내와 함께 3일간 워케이션을 갔어요. 애로사항이 많았죠. 저는 신규 사업 고객 유치를 위해 전화를 돌리고 있는 와중에, 아내는 옆에서 하릴없이 기다려야 했거든요. 그래서 저처럼 한 쪽이 휴가를 내야만 어디론가 함께 훌쩍 떠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푹 쉬다가 와서 일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휴가만 짧게 다녀왔습니다.”

홀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미혼 동료 집단은 다를까? 이 역시도 장기간 휴양지 체류를 함께 할 동행의 부재로 짧게 휴가만 다녀온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일’을 하러 가는 데 동행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들 수는 있겠다. 낮에는 일하느라 혼자 있어도 된다고 쳐도, 일을 끝내고 난 저녁에 휴양지에서 나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 대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가족과 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재택근무에 더 큰 메리트를 느끼기도 했다.

휴양지에서 일도 할 수 있는 나름의 혜택을 일부만 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언급해야 할 내용이 바로 ‘리프레시 지원금’이다. 재충전에 도움이 될 만한 모든 걸 구매하는 데 최대 303만 원을 쓸 수 있다. 평소라면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신형 가전이나 풀빌라에 이르기까지, (도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구매 항목 제한이 따로 없다.

[ 이미지 5 ] 동료들이 리프레시 지원금으로 구매한 품목

회사 일에서 벗어나 푹 쉬다가 오고 싶은 사람은 지원금 전액을 휴가비로만 쓰면 된다. 회사와 집이 아닌 자연 속에서 일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는 사람은 이 모든 걸 감안하고 워케이션 체류비로 지원금을 쓸 수 있다. 딱히 어디 가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 사람은 평소 갖고 싶었던 ‘비싼' 물건을 구매하면 된다. 집과 회사 중 어느 곳에서 일하는 게 더 나을지를 보고 선택하듯이, 워케이션 역시 개인이 느끼는 효용 가치가 크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가지 않는 양자택일로 보자면 앞서 언급한 우려는 기우일 뿐이다.

“저는 휴가도, 워케이션도 가지 않는 대신 집에서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직접 요리해서 먹겠지만 요새는 지원금으로 외식을 즐기고 있어요.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데 쓰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절대적인 시간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돈과 그 돈을 쓸 수 있는 시간까지 같이 주는 게 워케이션의 진짜 정의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시간과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휴가가 되는 거고, 휴양지 워케이션이 되는 거고, 고향집 워케이션이 되는 거죠.”

“작년에는 집 옥상에 놓을 평상이랑 텐트, 캠핑용 테이블을 조립해 펼쳐놓고 소고기를 구워 먹었어요. 올해 역시 워케이션을 가는 대신, 리프레시 지원금으로 M1 맥북 프로를 신사역 애플 스토어에서 바로 구매했죠. 집에서 신형 컴퓨터로 영화도 보고, 포털 뉴스도 보고, 웹툰도 보면서 여가를 보내는 게 제게는 힐링 그 자체입니다. 집중이 더 잘되는 사무실을 선호한다는 점에서도 앞으로 워케이션을 갈 계획은 없을 듯합니다.”

어쩌면 워케이션을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있다. 애초에 ‘휴양지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선택지가 없다면 논할 가치도 없는 문제다. 만약 한 달간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워케이션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면 ‘퇴사’ 말고는 다른 선택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휴양지에서 일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혜택이라 할 수 있겠다.


“내년에도 워케이션 가나요?”

현재 자비스앤빌런즈 재직자, 그리고 앞으로 자비스앤빌런즈 입사 지원자, 그리고 입사 지원 예정자 모두 관심을 두는 주제는 바로 ‘내년도 워케이션 실시 여부’가 아닐까? 답은 ‘내년에도 간다’다. 다만 그 방식이 올해와 비슷할지, 아니면 올해와는 또 다른 형태로 바뀔지는 미정이다. 현재 직원의 만족도가 높은 만큼 의견 수렴을 통해 진화된 워케이션을 계속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워케이션을 처음 시행한 지난해에는 이 사실을 널리 알리는 데 그리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하지는 않았어요. 일단은 지금 당장 없으면 안 될 거 같으니까 한 거지, 이걸 매년 해봐야겠다는 것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올해 초에 생각을 바꿨습니다. 작년보다 더 힘들고 빡센 시간이 올게 너무나 자명했고, 그게 ‘삼쩜삼’을 서비스하는 한 계속 반복된다면 차라리 좀 더 정교하게 개선해보자 싶었습니다.”

“내년에는 워케이션을 특정 기간이 아니라 연중 언제든지 다녀올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고민해보고 있어요. 꼭 5월 직후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기, 평소 대비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기에 가는 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싶거든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워케이션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대나무의 마디는 강한 바람과 지진을 견뎌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워케이션은 바로 이 대나무의 마디와 같아요. 또 다른 성장과 새로운 도전을 위한 발판이니까요. 하지만 자비스앤빌런즈의 워케이션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에요. 단 몇 차례 시도로 모두가 만족하는 답을 내놓는 건 불가능하죠. 그래서 앞으로도 회사 구성원 모두가 충분히 재충전할 시간을 마련할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나갈 겁니다.”



글 | 이수경
코멘트 | 김범섭, 서정화, 서동우, 이시영, 최혜원, 이혜준, 엄도연, 이정운, 허정우, 진영호, 박진수
감수 | 황재홍
일러스트 |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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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자비스앤빌런즈는 하루 8시간이 아닌 7.5시간 기준을 기준으로 월간 근무 시간을 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