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유연하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라고 떠들썩하게 자랑만 늘어 놓는 기업이면 어쩌나 싶죠? 그럼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세요. 직접 경험해본 자비스앤빌런즈의 조직문화와 복지 제도를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사장님과 부사장님이 자리를 깔아주셨으니,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지만 지극히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지난 7월 16일부터 28일간 태국(방콕 ,푸켓),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발리), 베트남(호치민)으로 워케이션을 다녀왔다. 비교적 기간이 길었던 만큼 지난 글에서 제기한 의문을 해소하는 데 집중해 다양한 컨셉으로 워케이션을 보냈다.

그 내용은 ▲가족 구성원(아빠, 남편, 여동생)이 줄줄이 따라나선 여행길[1]에서 마감일에 맞춰서 일을 처리하는 데 문제가 없을까 ▲완전한 휴식도 완전한 (업무) 몰입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 도리어 독이 되지는 않을까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무 환경과 잦은 인터럽트(방해)가 업무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까 이렇게 크게 3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워케이션은 내 기대를 훨씬 뛰어넘어선 대단히 값진 경험이었다. ‘한정된 시간 자원의 운용’ 측면에서 봤을 때 워케이션 동안 업무 몰입도나 생산성이 높으면 높았지 절대 낮지 않았다.​​

[ 이미지 1 ] 28일간의 워케이션 일정표

마감일에 맞춰 일하면서 가족여행하는 법

아빠와 여동생, 그리고 남편과 함께한 10일간의 태국 워케이션에서는 낮에 여행하고 밤에 일하는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워케이션 이튿날까지는 주말이라서 여행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문제는 오전 9시부터 쿠킹 스쿨이 예정된 월요일부터였다. 오전 액티비티에 참가한다고 자리를 비우는 만큼 일할 시간을 따로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모처럼의 가족 여행인 만큼 연차를 내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워케이션’을 주제로 한 글 마감이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새벽 5시 15분에 일어나 반 일치(4시간) 업무를 미리 하든가, 아니면 전날 미리 하든가. 후자를 택했다. 올빼미형 인간인 내게 밤늦게까지 잠들지 않는 게 더 쉬운 일이었다. 다행히 전날이 일요일이라 짬을 내서 일을 미리 할 수 있었다. 워케이션 기간에는 탄력 근무제[2]가 한시적으로 시행되어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낮에 여행하고 늦은 밤에 일하는 패턴은 가족 여행 내내 반복됐다. 남편은 새벽까지 일하느라 피곤하지 않냐며 걱정했지만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일한 건 아니었다. 운송 수단을 이용할 때 부족한 잠을 채웠기 때문이다. 여전히 피로감이 들 때면 체력 소모가 커서 휴식이 필요한 60대 아버지와 함께 낮잠 시간을 가졌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는 아빠의 얼굴을 보니 사흘 정도 밤잠을 줄이는 희생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만했다.

한편, 휴양지까지 온 마당에 모든 시간을 온전히 여행하는 데 쓰지 못해서 대단히 아쉬울 줄 알았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침구 정리, 설거지, 바닥 청소, 빨래와 같은 집안일에서 자유로워진 만큼 생긴 여유 시간, 침대나 소파에서 뒹굴뒹굴했던 자투리 시간을 모아서 여행하고 남는 시간에 일하거나, 일하고 남는 시간에 여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를 대단히 알차게 보냈다는 뿌듯함에 내 삶에 대한 만족도는 도리어 커졌다.

[ 이미지 2 ] 태국 여행 사진

뜻밖에 생긴 휴일[3]에 연차를 붙여 워케이션 막바지에는 말 그대로 ‘쉼’ 그 자체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5.5일을 내리 쉬다가 일을 하려니 좀이 쑤시기는 했다. 휴양지로 여행을 가서 남는 시간 틈틈이 일했던 상황에서는 전혀 없던 현상이었다. 이를 통해 휴가는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기한을 잠시 유예하는 수단일 뿐, 완전히 일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장치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일하는 틈틈이 여행을 즐기면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게 내 스타일에 좀 더 맞는 듯 싶었다.

만약 내년에도 워케이션을 간다면, 여행에 대한 큰 기대를 안고 휴가까지 내고 오는 직장인 여동생과 남편보다는, 아버지가 딱 적당한 동행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암 환자인 아버지의 체력을 고려했을 때 오전 또는 오후 근교 투어만으로도 충분할 테고, 나는 잠을 줄이지 않고도 아빠가 체력을 비축하며 쉬는 낮에 일할 수 있어서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힘’을 기를 기회

지난해 말 입사 후 5개월간은 매달 1개씩 글을 내다가, 6월 들어서면서부터는 2주에 한 번씩 썼다. 워케이션 가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발행 빈도라고 판단, 그대로 일정을 소화했다. 원격 근무 장소가 휴양지일지언정 집이나 사무실에서 일할 때와 비슷한 수준의 생산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이게 회사의 무한한 신뢰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래서였을까? 워케이션 3주 차에 접어드는 8월이 되면서부터 힘이 쭉 빠졌다. 눈앞에 놓인 풍경을 즐기는 일도 포기한 채 휴양지 원격근무를 하는 내 처지가 안타까워서 느낀 감정은 절대 아니었다. 그보다는 당장 눈앞에 놓인 일을 연이어서 하다가 소진되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 원인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겠다 싶었다. 문득 범섭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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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일에 몰두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일을 완전히 놓고 푹 쉬는 게 아닌 애매한 상태라고 느껴질 수는 있어요. 그래서 저는 워케이션을 '일의 성격을 달리하는 기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걸 제도화한 게 매년 6월에서 7월 초 사이 진행하는 상반기 OKR 회고와 하반기 OKR 수립입니다. 모든 조직이 여기에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왜 해야 할까'를 충분히 고민할 수 있어요.”

“대나무의 마디는 강한 바람과 지진을 견뎌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우리에게 워케이션은 대나무의 마디와 같아요. 거듭되는 도전 속에서 마주하게 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힘을 갖게 해주는 기회니까요.”

남들 OKR 회고 및 수립에 투자할 때 나는 글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비스앤빌런즈를 소개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글을 하나라도 더 빨리 쓰겠다는 마음만 앞세웠던 탓이다. 그 결과, 아웃풋(글쓰기)과 인풋(글쓰고 싶은 마음) 간의 균형에 조금씩 균열이 생겼던 듯하다. 지난날 직장 생활에서 가장 날 힘들게 했던 건 인풋이 제로(0)일 때 느끼는 무력감이었다. 그래서 이 상태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게 워케이션은 ‘대나무의 마디를 만드는 시간’으로서 그 의미가 남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미지 3 ] 6월 중순부터 한 달 반가량 진행한 블로그 아티클 업무

워케이션이 임직원의 충분한 재충전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도전해볼 여유와 힘을 기르라며(=완급조절) 회사가 마련해준 제도를 그 목적에 맞게 활용해야겠다 싶었다.

싱가포르에서 원격으로 1:1 미팅했을 때 선준님이 했던 말도 불현듯 떠올랐다. "여행 잘하고 오세요. 서울에서 볼 땐 지금보다는 살이 좀 더 타 있길 기대해보겠습니다." 회사가 허락한 느슨한 연결 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데 좀 더 자신감을 얻었다.

바로 콘텐츠 발행 일정을 느슨하게 조정했다. 글 쓰는 일은 잠시 내려놓고 남은 1.5주 간의 워케이션에서는 뒤늦게 나만의 회고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한국에 와서는 잠시 손을 놓았던 글을 다시 연이어 쓰면서 새로운 일을 벌이는 데 탄력을 받고 있다. 일에 전력투구할 힘이 난 거 보니 나머지 워케이션 기간에 나만의 ‘마디'를 만드는 시간을 성공적으로 보냈다는 확신이 섰다.

[ 이미지 4 ] 자비스앤빌런즈 워케이션 토퍼

하늘이 내다보이는 풍경이 만들어준 업무 환경

잦은 인터럽트는 업무 몰입을 방해한다. 대표적인 인터럽트는 급작스럽게 떠안게 되는 업무다. 상대가 시급성을 운운하며 지금 당장 처리해달라고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지금 하던 일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하던 일에 몰입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만일 이런 식의 업무 요청이 잦다면 생산성은 자연스럽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고 단계에서는 현재 쓰는 글에만 최대한 집중한다. 글의 시작을 여는 그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흐름이 한 번 끊기면 다시 처음부터 그 흐름을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 누구의 방해 없이 글 쓰는 데만 온전히 집중할 ‘덩어리 시간’의 확보 역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워케이션은 강제 인터럽트의 극치였다.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느라 짐을 싸고 다시 푸는 일은 15번 반복하고, 비행기를 무려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특히나 모두가 약속한 시각에 맞춰서 어디론가 이동해야 하는 만큼 원치 않은 타이밍에 작업 흐름이 끊길까 염려가 됐다.

아울러 두 대의 대형 모니터(32인치, 27인치)와 허먼밀러 의자, 널찍한 책상, 밝기와 색상 조절이 가능한 조명, 발 받침대가 없는 환경에서 일에 집중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수십 개의 화면을 띄워놓고 하는 자료 조사에서 큰 모니터는 필수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도 풀 장비를 갖춘 집에서 주로 일하면 일했지, 노트북만 들고 카페로 나가는 걸 극도로 꺼렸기에 더욱 불안해졌다.

범섭님이 말한 '워케이션은 일의 성격을 달리하는 기간'이라는 점을 다시 떠올렸다. 자료 조사 업무를 최소화하는 대신, 워케이션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 그 자체를 글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에세이형 글을 계획했다. 또 꿩 대신 닭이라고 그래도 업무에 필요한 최소 요건인 책상과 의자라도 갖춘 숙소를 구하는 데 집중했다. 카페나 공유 오피스를 따로 찾아다니는 데 들이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공간을 함께 쓰는 다른 이를 신경 쓰느라 업무 흐름이 깨지는 일을 막고 싶어서였다. 귀중품 도난을 염려해 화장실을 갈 때마다 매번 노트북을 챙겨야 하는 불편한 상황 역시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 이미지 5 ] 숙소 업무 공간

그 결과, ‘각종 업무용 장비가 즐비해 있지만 볼품없는 풍경이 펼쳐진’ 공간과 ‘책상과 의자만 놓인 대신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공간을 등가교환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 앞에서는 각종 장비는 별 대수가 아니었다. 최장 한 달 정도는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책상과 (등받이) 의자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일하는 데 큰 무리가 없겠다 싶었다.

평소에도 최소 30분에서 1시간에 한 번은 잠깐이라도 일을 멈췄기에 워케이션 도중 마주한 잦은 인터럽트는 생각보다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료 조사 업무였다면 잦은 인터럽트로 인해 생산성이 분명 낮아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됐다면 눈앞의 풍경도 사치였을 테고 장시간 앉아서 일하기 불편한 의자와 책상, 여러 개의 문서를 빠르게 훑어볼 수 있는 모니터의 부재가 크게 아쉬웠을 듯하다.

(해외) 휴양지 원격근무 시 가장 필요한 전제 조건은 '어떤 업무를 하러 가는지'가 핵심이라는 결론을 자체적으로 내렸다.

워케이션 이후...인생관이 달라졌다

내게 여행은 늘 시간과 돈의 문제였다. 성수기를 빗긴 기간에 최대 1주일 남짓의 여행만 고려해왔던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자비스앤빌런즈의 워케이션 덕분에 시간과 돈이라는 문제에서 벗어나 내 인생 통틀어서 가장 멋진 여행을 하고 왔다.

기간이 길었던 만큼 1주일 남짓 휴가에서는 감히 생각해보지도 못한 스탑오버 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매력을 한꺼번에 느끼고 왔다. 주중에는 일과 여행을 모두 잡는 알찬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는 한국에서라면 귀찮아서 감히 도전해보지 않았을 다양한 액티비티를 체험했다. 해외에 나가면 먹고 자는 모든 게 다 비용인데 다행히 회사에서 준 303만 원의 리프레시 지원금 덕분에 장기 여행에 따른 비용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과감히 휴직을 내고 함께 온 남편은 현재 내게 주어진 행운을 미래에 똑같이 거머쥘 확률을 보장할 수 없다면, 가능할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내 인생에서 최고로 꿈같은 시간을 보냈기에 나도 여기에 공감했다. 한평생 느낄 행복의 총량에 한계가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쟁취할 수 있는 행복은 쟁취하면서 사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우리 부부의 새로운 신조는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유예하지 말자'가 됐다.

새로운 혁신과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조직 문화를 누리며 모두에게 지지와 응원을 받는 성과를 만들 수 있는 회사에 다니는 일. 어떻게 보면 ‘행복을 유예하지 않는다’는 신념에 부합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가까이서 지켜본 모든 사람이 내게 “이직하더니 행복해 보인다”고 하는 거 보면 맞는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자비스앤빌런즈에 매력을 느끼는 분들 역시 ‘입사 지원’이 지금 당장 쟁취하면 좋을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는 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워케이션 시리즈를 마친다.

[ 이미지 6 ] 싱가포르, 발리, 호치민에서의 워케이션


글 | 이수경
감수 | 황재홍
일러스트 |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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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본인 및 워케이션에 동행한 가족 모두 올 초에 코로나에 감염 후 회복한 바 있으며, 코로나 백신 3차 접종을 마치고 여행길에 올랐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바로 PCR 검사를 시행해 ‘음성’ 판정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코로나 증세는 발견되지 않았다.

  2. 일이 많은 주(일)의 근로 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일)의 근로 시간을 줄여 평균 근로 시간을 주 40시간에 맞춰서 일하는 방식

  3. 자비스앤빌런즈의 창립기념일은 8월 15일로, 이날을 유급휴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날이 법정공휴일인 광복절인 관계로, 대신 16일에 전사가 모두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