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쩜삼이 첫 대성공을 일궈낸 지난 2021년 여름. 이때 처음 자비스앤빌런즈는 ‘해외 진출’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해외에서 사업체 설립부터 운영, 그 모든 일을 다 해본 사람을 찾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날 구세주가 나타났다. 홍콩의 한 작은 영화관 사장님이었던 ‘미스킴', 김현주 글로벌 사업부문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속담에 ‘그 사람의 미래와 운명을 보려면 사귀는 벗을 보라’는 말이 있다. 자비스앤빌런즈의 영국 해외 사업 전략을 알려면 이 일을 담당하는 사람을 살펴보면 되겠다 싶었다. 실제로 그가 약 20년간 만들어온 커리어패스에 그 해답이 있었다. 가히 자비스앤빌런즈를 위한 맞춤형 인재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미스 킴’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는 여정
김현주 글로벌 사업부문장은 부모님과 언니가 영어로 자유자재로 대화를 나누는 게 부러웠다. 영어를 제일 못해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석박사 과정을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든 해외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언니랑 미국에 가겠다고 졸랐다. 언니가 성인 보호자로서 함께 한다면 괜찮을 거라며 간신히 부모님 허락을 받아 낸 김 부문장. 그렇게 해서 고등학생 때 처음 미국 땅을 밟았다.
대학교 입학 후 2년이 된 시점에서 김 부문장은 전공 선택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려면 해외 취업이 자유로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문과의 꽃인 ‘경영학’에다가 ‘국제’라는 키워드를 더한 ‘국제경영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웬만한 커리큘럼은 일반 경영학과 비슷하나, 국제 경제∙정치∙산업을 두루 살펴본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미국의 10년 경기 호황인 IT 버블의 붕괴로 촉발된 2000년 경제위기[1]. 이에 따라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는 아시아 출신의 인문사회ㆍ경상계열을 전공한 유학파의 미국 내 취업 문턱이 높아졌다[2]. 취업 전선에 뛰어든 김 부문장이라도 예외랄 게 없었다. 이에 학부 졸업 후 한국의 한 컨설팅 회사에 입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비데의 B2B 영업이었어요. 비데가 국내에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면서[3]부터예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비데를 화장실에 설치한 주택 및 상업시설이 많지 않았죠. 아직은 일부 부유층에서나 쓴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점에서 착안[4], 고급 상업시설부터 공략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백화점과 호텔을 모두 찾아갔는데 모두 다 거절당했어요. 그나마 저희를 만나준 곳이 삼성동 한 호텔이 유일했으나 영업에는 결국 실패했답니다. 하지만 주로 서류 작업만 하는 컨설팅 펌에서 타깃을 골라 직접 맨발로 영업까지 뛰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 부문장은 더 빠른 성장을 성취하고 싶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 중에는 석∙박사 출신의 쟁쟁한 인재가 즐비했다. 이들 같은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의 줄임말)’가 되려면 좀 더 학문적인 내실을 다져야겠다고 판단, 퇴사 후 글로벌 MBA 과정을 밟았다. 학부에서 배운 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나 한국 쪽 인맥을 새로 쌓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 9년을 미국에서 생활하느라 잘 몰랐던 한국의 사회생활을 속속들이 알아갈 수 있는 진귀한 시간이었다.
MBA 졸업 후에는 그룹 인하우스 전략 컨설팅을 도맡는 조직인 롯데미래전략센터[5]에 입사했다. 한창 해외 확장 전략을 세우던 식음료 계열사(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리아)의 프로젝트를 주로 담당했다. 롯데리아의 인도 QSR(Quick Service Restaurants) 시장,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의 동남아시아 주요 6개국(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미얀마, 태국)의 시장 진출 검토가 바로 그 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롯데시네마가 계열사 임원 초청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던 센터장이 롯데시네마 홍콩 진출을 담당할 ‘쓸만한 친구'로 김 부문장을 추천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미래전략센터에서 3년 정도 일하다가 계열사 현업으로 옮겨가는 게 통상적인 수순이다. 무려 남들보다 1년 먼저 온 기회를 꽉 잡고 싶던 김 부문장은 이 일을 해보겠다며 자원했다.
그렇다면 롯데시네마는 왜 홍콩 진출을 염두에 뒀을까?
2011년 그 당시 중국 정부는 합작 법인 형태로만 외국 기업의 극장업 진출을 허용하며 외국 자본의 극장업 참여 지분이 5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었다[6]. 극장 소유권만 있을 뿐 경영주도권을 갖지 못한 롯데시네마는 중국에 공격적인 영화관 확대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하지만 중국과 홍콩 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 이하 CEPA)[7]에 따라, 홍콩에서 영화관을 3년 이상 운영하면 중국 내 다수의 지분 확보가 가능해졌다[8]. 이에 롯데시네마는 홍콩을 교두보 삼아 중국 시장에 우회 진출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었다.
2011년 롯데시네마로 소속을 옮긴 김 부문장은 홍콩 법인 설립에 본격 돌입하기 전 5년간 롯데시네마 동남아시아 해외 법인에서 일하며 견문을 넓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영화와 파라마운트 영화의 베트남 상영 업무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상영 기간 2주를 기점[9]으로 수익을 몇 대 몇으로 나눌지, 하루 몇 회 상영할 건지, 몇 개 스크린을 확보할지 등 자잘하게 결정할 일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버튼' 하나 누르면 상영할 영화 파일을 디지털로 내려받는 게 가능하지만, 201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DCP[10] 파일을 하드웨어에 저장해서 배송을 보내야 했어요. 그래서 수입통관 업무까지 봐야 했죠. 이때의 경험이 홍콩에서 홀로 영화관을 운영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스 킴, 작은 영화관 사장이 되다
그렇게 경험을 쌓은 김현주 부문장은 1년간 홍콩 법인 설립에 집중한 끝[11]에, 2016년 2월 홍콩섬 동구 샤우케이완(Shau Kei Wan)에 ‘L 시네마'를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성인 영화관이 들어섰다가 망해서 오랫동안 공실이었던 곳에 총 174개 좌석에 2개 스크린을 설치했다.
중국 내 다수지분 확보가 최우선이었던 만큼, ‘흑자 전환'이 아닌 ‘최소한의 비용으로 3년간 운영하기'가 목표였다. 아쉽게도 다른 데와 경쟁할 규모나 시스템을 전혀 갖추지 못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인구 7백만 명이 사는 홍콩에 위치한 104개 영화관 중 온∙오프라인 티켓판매 시스템과 팝콘 판매점을 두지 않은 유일한 곳이었다. 사비를 털어서 연 작은 영화관으로 착각한 한 관람객은 ‘미스 킴 힘내라'는 응원을 보낼 정도였다. 실제로 나 홀로 영화관 운영은 쉽지 않았다.

“전체 거래 중 현금결제 비중은 80%에 이르렀어요. 보통은 입금해주는 보안 회사를 따로 쓰는데 역시 비용 때문에 이조차 아껴야 했죠. 그래서 영화관 티켓 팔아서 번 모든 현금을 매일 은행에 가서 입금해야 했습니다. 창구 이용 시 최대 100장의 지폐만 무료로 입금할 수 있었어요. 홍콩이 금융 강국이라곤 하지만 여전히 은행 창구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던 지라, 대기표를 여러 차례 뽑아가며 몇 시간에 걸쳐 입금 업무를 완수하곤 했죠.”
“한 번은 한국에 잠깐 출장 다녀왔던 사이 금고에 있어야 할 돈 150만 원이 사라졌어요. CCTV를 확인해봤는데 그날만 딱 꺼져있었죠. 누군지는 짐작이 갔어요. 하지만 범인이란 걸 입증할 방법이 없었죠. 어쩔 수 없이 사비를 털어서 시재(현금보유액)를 메꿨어요. 또 다시 금고가 털리는 일을 방지하고자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 저녁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영화관 운영 시간 내내 영화관에 붙어있었습니다. 집에 나홀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에 이송된 적도 있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죠.”
“영화관에 쥐, 바퀴벌레가 참 많았어요. 하지만 비용 문제로 해충 방제 서비스에 쓸 돈이 없었어요. 한 직원이 고양이를 들이면 좋겠다는 말에, 유기묘 새끼를 데려와 정성스럽게 키웠어요. 영화 ‘코코'가 개봉했던 해(2017년)라서 이를 기념해 이름을 코코로 지어주었습니다. 다행히 직원 말대로 코코랑 함께 영화관 출퇴근을 함께한 이후로는 쥐나 바퀴벌레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 홍콩의 한 작은 영화관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선전에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불과 오픈 반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화관 인근에 사는 대다수의 주민이 중하위 소득자라서 티켓 가격 지불 의향이 매우 낮을 거라 판단, 주변 영화관의 평균 티켓 가격인 110~130HKD(홍콩달러)[12]의 절반 수준(60HKD)에 책정한 티켓을 판매하고도 얻은 값진 성과였다.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타이쿠(Tai Koo)에는 영화관을 갖춘 복합 쇼핑몰이 이미 있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영화관 티켓 가격은 인근에 많이 거주하는 한국 기업 주재원들에게 큰 문턱이 되었죠. 그래서 절반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는 데다가, 예쁘고 아기자기한 우리 영화관으로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학교나 직장에 가느라 영화를 보러 오기 어려운 오전 평일에는 인근 노인돌봄센터에 조조 티켓의 박리다매 전략을 취했고요. 그 결과, 성수기 기준 좌석점유율 50~60%[13]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관과 팝콘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죠. 하지만 팝콘 매장 하나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잖아요. 이를 만회하고자 흑자 전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1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매장 공사비, 자재 구입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죠. 그래서 놀이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팝퍼를 설치했어요. 홍콩 식품환경위생국으로부터 영업 허가증 받을 필요도 없고 예산에도 딱 들어맞았죠. 영화관 흥행과 더불어 팝콘 판매 역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보통 주재원은 해외 사업 첫 삽만 뜨거나 운영만 안정화하거나, 폐업만 담당하는 등 파트별 업무만 해요. 그런데 전 5년에 걸쳐서 설립과 운영, 폐점까지 영화관의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모두 경험해본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영화관 규모도 크지 않았기에 프라이싱, 채용, 마케팅, 운영, 재무, 시설 관리 등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으로 직접 결정해나가며 실무 경험도 탄탄히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2020년 사이 위기가 닥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자치권과 정치적 자유가 줄어든 홍콩에서는 기업 경영 환경이 점차 불안정해졌다[14]. 친중파 케리람 행정장관의 선출 이후 일어난 2019년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는 극한의 불안감을 야기했다. 이에 홍콩에 글로벌 헤드쿼터(HQ)를 뒀던 수많은 회사가 본국 귀환 또는 싱가포르로 이전해갔다[15].
코로나로 인해 극장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마저 끊겼다. 영화배급사가 기대작의 개봉일을 차일피일 미뤄서 극장가에서 볼만한 영화 자체가 없었다. 이는 매출 급락으로 이어졌다. 고객과의 유일한 소통 수단인 페이스북 페이지를 활용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조사해 과거에 흥행했던 영화 재상영까지 기획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이 문화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외국인 투자 지분 제한을 폐지[16]하기까지 했다. 홍콩에서 영화관을 운영하지 않고도 중국 다수지분 확보가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불안정한 정세에 매출도 급락한 상황인 만큼 철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L 시네마는 홍콩 진출 5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홍콩인의 평균 영화 관람 횟수는 우리나라 수준으로 증가하는 추세였습니다. 홍콩이 한 때 영화로 핫했던 곳이잖아요. 그래서 홍콩에서의 영화관 산업이 계속 성장할 거라 봤어요. 이런 와중에 외부적 요소로 인해 영화관 문을 닫는 건 대단히 아쉬웠어요. 진출국의 정치 및 경제 상황에 따라 해외 사업이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는 한계를 절실하게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영화관은 동네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모여서 수다를 떠는 곳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철수 소식에 고객들 역시 대단히 아쉬워했습니다. 영화관을 폐장하면 모든 시설물을 다 철거하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상태로 원상 복구해놔야 해요. 그런데 로컬 체인 영화관이 L 시네마 인수할 때 인테리어가 정말 마음에 드니 아무것도 버리지 말고 그대로 유지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라도 동네 사랑방으로 사랑받았던 그 모습을 추억할 수 있겠다 싶어 다행이었습니다.”
자비스앤빌런즈와의 운명적인 만남
이후 김 부문장은 퇴사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간만에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보고 체계가 좀 더 간결하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아나설 수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자기효능감[17]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마침 그런 김 부문장에게 한 통의 연락이 걸려 왔다. 연락해온 사람은 롯데미래전략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멘토이자, 지금은 보안 스타트업 S2W를 차린 서상덕 대표였다. 그는 자비스앤빌런즈의 최선준 사업 개발 총괄 부사장을 만나 이야길 들었다며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지원해 줄 회사 같으니 한 번 만나봐라”고 강력히 추천했다. 평소 본인 커리어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정도로 존경하는 멘토의 추천에, 김 부문장은 자비스앤빌런즈에 호감을 느꼈다. 이윽고 세 사람은 한자리에 모였다.
자비스앤빌런즈는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성취를 해낼 사람을 찾고 있었다. 자기주도적으로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낼 회사를 찾고 있던 김 부문장에게 딱 알맞는 곳이었다. 서로 핏이 맞겠다 싶었다. 특히 ‘A라는 나라를 시도해봤는데 우리랑 핏이 맞지 않다면 빨리 미련을 버리고 다른 걸 시도한다’라는 의사결정 과정 방식에 있어서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8월, 9월경부터 범님과 함께 해외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이미 다들 잘 알고 계시지만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은 제대로 준비하고 들어가도 실패할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같은 한국인 고객을 이해하는 일도 이토록 어려운데 문화∙정치∙경제 등 모든 게 다 다를 수밖에 없는 해외 고객을 감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의 영역이죠. 죽어라 노력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고요.”
“해외 사업은 마치 모든 스타트업이 당연히 공략해야 할 대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이런 접근 방식은 타당하지 않다고 봤어요. 그렇다고 해외 사업을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자는 의미는 아니에요. 사업가라면 응당 해외 진출을 꿈꿀 테니까요.”
“이에 자비스앤빌런즈는 해외 시장 접근 방식을 ‘각 잡고 제대로 해보자’가 아닌, ‘가볍게 시작해보자’로 정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볍게’는 이런 의미입니다. 해외로 나갈 사람을 한 명 뽑고, 온보딩 차원에서 2, 3개월간 진출 국가를 탐색한 후 바로 현지에 투입하자. 하지만 우리 생각과 다르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다른 나라를 찾아 나서자.”
“그러려면 언제든지 새로운 나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또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그 자체를 실패라 느끼지 않고 성공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줄 분이면 좋겠다 싶었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보통의 직장인이 할 수 있는 생활이 전혀 아니잖아요. 회사가 일본 가라면 가고, 미국 가라면 가고, 영국 가라면 가고… 그렇게 아무 연고도 없는 나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런 사람을 찾기가 정말 쉽지 않았죠.”
“그러다 현주님을 딱 만났어요. 롯데시네마 해외 법인의 설립부터 폐업 절차까지 직접 해본 경험이 대단히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나라 저 나라 옮겨 다니는 데 열려 있는 부분도 핏이 맞았죠. 또 현주님은 적은 리소스로 빠르게 실행해보고, 안되면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걸 시도해보는 ‘거친도전’ 그 자체였어요. 이 사람이 가진 경험과 열린 마인드가 자비스앤빌런즈의 해외 사업 전개에 큰 힘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이후 입사 제안과 수락, 면접 전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예정돼 있던 부모님과의 효도 여행을 다녀온 후인 올해 3월 말, 이렇게 해서 김현주 부문장은 자비스앤빌런즈호에 합류했다. 그가 입사하자마자 먼저 살펴보기 시작한 시장은 바로 동남아시아였다(다음에 2편이 이어집니다).
글 | 이수경
감수 | 김현주(인터뷰이), 최선준, 최재홍
일러스트 | 윤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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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2010-11), KDI 경제정보센터,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일자린 고국뿐…" 유학파 몰려온다(2003-12), 매일경제, 이상훈∙신현규 기자
비데 시장 각축 치열(2003-2), 한겨레, 구본준 기자
비데, 알고 쓰십니까?(2019-9), 뉴스핌, 민경하 기자
2002년 개설 당시 명칭은 미래경영연구소. 김현주 부문장이 입사한 2009년 당시에는 롯데미래전략센터로 불렸다. 현재 명칭은 롯데미래전략연구소다.
중국은 지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외국 자본이 극장 건립이나 소유에 최대 49%의 지분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중국반환 이후 홍콩 영화산업의 변화(2014-01), 문화정책논총, 김진영 한양대학교 중국문제연구소 연구조교수
2003년 6월 이후에는 매년 1회 보충 약정을 체결하여 상호 간 경제 개방 수준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왔다.
외국 기업이 홍콩에서 3년 이상 실질적인 사업 활동을 수행해 홍콩 기업으로 인정받으면 중∙홍콩의 CEPA 혜택을 받는 게 가능했다. 그중 하나가 ‘영화관' 분야로, 중국 내 영화관 사업을 총괄할 자회사를 전액 출자한 뒤 하나 이상의 영화관을 여러 지역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운영하던 합작법인이 이미 있다면 파트너사의 동의를 구해 자사주 매입을 진행해야 한다. 이 방식을 원치 않다면 새로운 법인을 따로 세워야 한다. 중국-홍콩 CEPA를 통한 중국 서비스시장 진출방안(2017-2),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적으로 2주마다 동원 입장객과 매출액을 확인 후, 상영 스크린 수나 수입 배분 방식을 변경한다.
Digital Cinema Package의 약자. 과거 ‘필름'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극장에 설치된 영화 상영용 시스템에서 구동할 수 있는 파일의 포맷이다.
영화관 입지 및 공사 업체, 회계법인 선정뿐만 아니라 영화관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업무를 포함한다.
2015년 한 해 평균 환율(1HKD=145.95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홍콩에서의 영화관 평균 티켓 가격은 16,055원에서 18,974원 사이라고 볼 수 있겠다.
L 시네마 기준 비성수기 기간의 평균 좌석점유율은 7%, 평상시 평균 좌석점유율은 20%이었다.
홍콩 시위 사태의 영향 및 시사점(2019-8),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이승신∙양평섭∙허재철∙연원호∙현상백∙김효상∙양다영∙김홍원∙김유리
민주주의 후퇴하는 홍콩…'亞 금융허브' 싱가포르에 뺏길 판(2019-6), 한국경제, 강동균 기자
중국은 지난 2019년 ‘외국인투자 네거티브 리스트’를 발표하며 영화관 건설·경영 부문의 외국인 자본 제한을 전면 취소했다. 2019년 중국 「외국인투자 네거티브 리스트」의 주요 내용 및 평가(2019-7),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이한나∙김홍원
특정한 과제를 실제로 일정 수준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