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 한달살이, 가족, 휴식’ 세 마리 토끼 잡는 워케이션 떠난다
워케이션은 자비스앤빌런즈 입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인지(커리어패스), 내가 가진 능력을 원하는 곳인지(연봉, 성과), 인품이 훌륭한 리더가 있는지(성장),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회사인지(기여)가 더 중요했다. 나는 이 모든 질문에 ‘예스(yes)’라는 답을 할 수 있어서 자비스앤빌런즈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태국행 비행기 탑승수속을 마치고 나서 기내에 들어선 순간, 남은 연차가 얼마 없어 감히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한 달 해외살이’ 로망을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물론, 번아웃을 막는 충분한 ‘휴식’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했다.
이 모든 건 전적으로 워케이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비스앤빌런즈 오면서 기대한 건 토끼 한 마리(커리어)뿐이었는데, 다른 세 마리도 한꺼번에 잡다니! 어떤 회사로 이직할지를 두고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워케이션이 자비스앤빌런즈 입사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한 방이 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자비스앤빌런즈가 워케이션을 도입한 배경과 그 의의는 ‘회사가 전직원에게 휴양지 원격근무를 적극 권장하는 이유’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한 달 휴양지 원격근무’라는 컨셉으로 워케이션을 다녀온 이들의 관점이나 가치관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워케이션은…해외 한달살이 꿈을 이룰 기회
자비스앤빌런즈 입사 3주 전 몰디브로 7박 8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4일 차에 접어들면서는 매일 반복하는 스노클링, 해변 요가, 비치 클럽에서의 술 한잔이 조금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 날에는 매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했다. 참 이율배반적이다.
이처럼 한 주 남짓의 여행에서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과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고는 한다. 아마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보고 즐기려다가 지친 게 원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이를 30개 초콜릿을 단 며칠 만에 먹어 치우느라 그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상황에 비유하고는 한다. 그래서 하루에 1개씩 초콜릿의 맛과 향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장기 여행'에 큰 기대를 품는 건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직장인 신분으로 한달살이 로망을 실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튜브(YouTube)에서 ‘한달살이’를 주제로 브이로그를 올리는 사람이 주로 (유)학생, 전업 프리랜서, 퇴사자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회사에 따라서는 한달살이가 아예 실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3년 근속 시 무려 한 달 유급 휴가를 주는 회사에 다니면 된다. 운 좋게도 나도 그런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계열사 간 이동으로 근속연수를 채우지 못해서 정말 아쉽게도 이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지금은 1주일 단기 휴가를 떠나는 일조차 어렵다. 지난해 12월 입사한 나는 2022년 8월 기준으로 총 8일의 유급휴가(연차)[1]를 받았는데, 결혼 준비 등의 이유로 소진하고 남은 게 고작 3.5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까지 합쳐 6일 정도의 짧은 휴가를 다녀오는 정도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근속연수와 관계없이, 연차를 내지 않고도 최대 한 달간 휴양지에 머물며 일할 수 있는 워케이션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인턴으로 일했던 곳을 포함해 지금까지 다녀본 총 8곳의 회사 중 그 어떤 곳도 이런 파격적인 근무 방식을 내건 회사는 없었다. 자비스앤빌런즈가 처음이었다. 남은 연차가 별로 없는 내게 ‘원격근무’는 대수도 아니었다. 회사 일만 하면 해외에 한 달간 머물 수 있다는 옵션을 나는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날짜를 계산해보니, 한 달 워케이션 중 10일의 주말과 남은 연차를 탈탈 털어서 총 13.5일간 꿀 같은 휴식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나머지 17.5일에도 마음만 먹으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투어를 가는 대신, 오전이나 이른 저녁에 일하는 등 좀 원활한 협업이 가능한 선에서 근무 시간을 자유롭게 편성하면 되기 때문이다. 워케이션 기간에는 한시적으로 탄력 근무[2]를 할 수 있는 덕분이었다.
“신혼여행 중에 ‘태국의 몰디브’라고 불리는 라차섬의 한 리조트 선베드에 누워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사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5일 결혼 휴가에다가 주말 며칠 껴서 온 짧은 일정으로 온 저희는 이것저것 하느라 바빠서 앉아서 책 읽을 생각조차 못 했거든요. 아마도 더 길게 온 휴가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여유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신혼여행지에서 남모르게 부러워했던 그 여유를 저도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 강원도 고성으로 3주 워케이션을 다녀왔습니다. 이직을 위해 잠시 회사를 그만둔 아내와 다행히 서로 시간을 맞춰서 올 수 있었죠. 살면서 우리에게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은 정도로, 정말 여유로웠습니다.”
문제는 ‘비용’이다. 항공료는 일주일 여행을 가든, 한 달을 가든 거의 같으니 그렇다고 쳐도, 숙박비, 식비 등의 생활비는 체류 기간에 비례해 증가하기 때문이다. 모든 비용을 집계해본 결과, 휴직을 낸 남편과 함께하는 해외 한달살이에 최소 826만 원[3]이 들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2인 가구의 월 평균 지출액 300만 원[4]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다행히 303만 원의 리프레시 지원금과 더불어, 연간 120만 원 한도로 제공되는 빌런즈 채우기(일종의 복지포인트) 일부를 활용해 자기 부담 비용을 42%까지 줄일 수 있었다. 그 결과, 실제 비용은 486만 원(인당 243만 원)에 이르렀다. 일하는 기간의 체류비를 회사 지원금으로 충당한다고 가정한다면, 한 사람이 13.5일 동안 매일 18만 원을 숙박비, 교통비, 식사비(+주류)로 쓰는 셈이다. 올해 1인당 1일 평균 여름 휴가비가 15.2만 원[5]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이는 적정한 수준의 소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회사 지원금이 없었더라도, 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다시 없을 ‘직장인 신분인 채로 해외 한 달 체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게 여행은 ‘돈’보다는 ‘시간(체류 기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비스앤빌런즈에서는 리프레시 지원금과 워케이션 제도 덕분에 ‘돈’과 ‘시간’ 모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회사’와 ‘커리어’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게 역시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숙소비 310만 원, 차량 왕복 탁송비 60만 원, 차량 기름값 30만 원, 현지 체류비(식사비, 관광지 입장료, 생활용품 구매비 등)로 300만 원 등 어른 두 명과 어린이 한 명의 한 달 제주도 워케이션에 총 700만 원이 소요됐습니다. 지원금 액수에 딱 맞춰서 2주만 다녀오는 방법도 있기는 했죠. 하지만 제주도 한달살이라는 꿈을 이룰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고, 때마침 아내는 퇴직 후 구직활동 중이었습니다. 아내가 다시 새로운 직장을 구하면 이렇게 길게 함께 휴양지에서 머무를 기회가 또 있지는 않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바로 잡았습니다.”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뀔 때 미국 한 번 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저 역시 워케이션을 통해 그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항공료 300만 원, 숙박 400만 원, 생활비로 400만 원 등 저 혼자 온 워케이션에 최대 1,200만 원을 지출할 듯합니다. 비용이 조금 부담은 되었습니다만, 어차피 계속 돈을 벌 거니까 괜찮겠다 싶었어요. 그 나이대에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하나라도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제게는 더 중요했습니다.”
워케이션은…가족과 함께 할 특별하고도 긴 여행의 기회
워케이션을 갈 수 있다는 이야길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가족이 함께했던 오키나와 여행은 아버지 인생 최초의 해외여행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다음을 기약할 수가 없었다. 2019년 1월 대장에서 간으로 암의 원격 전이가 일어나 4기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간으로 전이된 암 크기가 줄어들어야만 수술할 수 있다는 ‘조건부’가 붙었다. 다행히 표적치료제가 잘 맞아 간 부위 3개 병변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그 덕분에 대장과 간의 암 제거 수술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아빠에게 해외여행을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코로나가 터져서 국내 여행조차 여의치가 않았다. 항암치료로 인해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암환자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치명적이라는 말에 몸을 사려야만 했다. 그 사이 간에서 암이 재발했고, 아빠는 그 힘든 개복 수술과 항암 치료를 다시 받아야 했다. 지난해 12월이 되어서야 온 가족이 겨우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몇 달에 한 번 간격으로 추적 검사 결과도 나쁘지 않고, 아빠의 컨디션도 꽤 좋아졌다. 이 와중에 지난 몇 년간 닫혔던 하늘길은 다시 열렸고, 내게는 전세계 어디에서든 한 달간 체류할 기회가 생겼다. 지난 3년을 떠올려봤을 때, 이렇게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건 다시 없을 기적이자 행운이었다. 그래서 지금 아니면 아버지 여권에 두 번째 출입국 도장을 찍어드릴 기회가 또 언제 생길까 싶었다.
하지만 63세의 암환자에게 해외 한달살이는 신체적으로 큰 무리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러려면 내가 한달살이를 포기하거나, 아버지가 원하는 일정만 소화하고 귀국할 수 있도록 제삼자가 출국 또는 입국을 도와줘야 했다. 다행히 여동생이 연차 내서 아버지를 모시고 올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여기에 회사 일 하느라 아버지와 여동생의 여행 가이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나를 도와준다고 남편도 여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스무 살에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울산에 계신 부모님이랑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방학에도 동아리 활동하느라 바빠서 2주 이상 집에 있어 본 적이 없었고, 서울에 직장을 잡은 후로는 명절 때나 겨우 부모님 얼굴을 봤어요. 여행에 딱히 큰 욕심이 없던 저는, 이번 기회에 고향 집에서 한 달간 워케이션하며 일하는 외의 모든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했어요. 집 근처 이곳저곳 함께 다니는 것도 좋았지만…쇼파에 느긋하게 앉아 티비나 넷플릭스를 보며 함께 보내는 평범한 일상이 더 좋았어요. 서울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리운 가족의 품이었거든요.”
직장인 혼자서도 어려운 해외 한달살이. 맞벌이 부부에게는 당연히 더 어려운 일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워케이션 또는 3년 근속시 1달 유급 휴가를 주는 회사에 다녀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짧게 휴가만 다녀오는 동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남편의 선택은 ‘휴직'이었다. 아직 아이가 없어서 여행이 자유로운 지금, 가장 젊은 날을 함께 하는 지금, 장인어른이 건강한 지금을 위해 한 어려운 선택이었다.
엄마는 아빠 환갑 때쯤엔 함께 국내외로 여행 다닐 계획을 세웠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벌어야 한다는 핑계로 ‘그 시기’를 지금이 아닌 ‘가깝고도 먼 미래’로 유예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부모님을 곁에서 지켜본 나는 여력이 된다면 지금 이 순간을 누리는 게, 행복한 인생을 사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의 뜻을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종적으로는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하는 9일간 태국에서, 나머지 18일 동안은 남편과 발리 워케이션을 할 예정이다. 쓸 수 있는 연차가 3.5일밖에 없어서 여행지에서도 노트북을 끌어안고 일해야 한다. 사실 앞서 이미 강조한 대로 이는 별 상관없는 문제였다. 회사에서 휴양지에서도 일할 수 있는 제도 자체를 운영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내게 이런 선택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근무 시간'이었다. 휴가를 내자니 연차가 모자랐고, 장인어른과 처제를 모시고 다닐 남편의 불편한 상황을 외면한 채 일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는 함께 관광지를 다니거나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는 대신, 오전과 저녁(새벽)에는 일하는 걸로 합의했다. 아침마다 즐겼던 늦잠과 저녁의 펍/바 투어를 포기하되, 조금만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아주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남편하고는 신혼여행 이후로 4년간 단둘이 여행을 간 적이 없었어요. 코로나가 터져서 국내외 여행을 엄두도 내지 못한 점도 있지만 그나마 짧은 휴가는 시댁이나 친정 가족과 함께 보냈거든요. 연말정산 미리보기, 마이비즈[6]에 이르기까지, 계속 신규 프로젝트에 참여하느라 바빠서 길게 휴가를 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요. 그 와중에 제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일을 끝내고 쉬길 바라는 마음에, 같이해야 할 집안일을 남편이 홀로 하며 내조를 톡톡히 해줬죠.”
“이렇게 항상 제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남편이랑 단둘이만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신혼여행으로 갔던 태국에서의 한달살이를 제안했어요. 아쉽게도, 남편이 사업을 하고 있어서 자리를 오래 비우기는 어려웠어요. 그래도 업무적으로도 느슨하게 연결되는 이때, 잠시 새로운 프로젝트 개시를 쉬어가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해볼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워케이션 중 일주일은 휴가를 내고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좋은 추억거리를 쌓았습니다.”
워케이션은…회복탄력성을 기를 기회
글쓰기는 지금까지 내가 습득한 모든 지식과 경험을 쏟아붓는 일이다. 글만 연달아 쓰다 보면 ‘소진된다'는 느낌을 쉽게 받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 쓰고 싶은 ‘주제'는 물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조차 바닥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영화나 연극, 책 등의 매체를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감각적 자극을 획득하는 일 역시 글쓰기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는 작가에게만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웃풋(글쓰기)과 인풋(글쓰고 싶은 마음) 간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은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에게 요구되는 공통 항목이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1년 중 가장 많은 고객과 환급 신청이 몰리는 5월이라고 해서 더 바쁘게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평소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더 노력했다. 이런 상황이었다 보니 동료들이 말하는 ‘업무가 빡세서 상반기는 너무나 힘들었다’라는 말을 100%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 싶어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자 시절 때 일을 떠올려봤다.
경제지 기자였을 때는 당일 취재하고 기사 쓰느라 바빠서 내일 쓸 기사를 준비할 시간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새벽까지 노트북을 켜놓고 공부하는 게 일상이었다. 뉴미디어 스타트업 다닐 때도 기사를 준비할 시간이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새벽 2시, 3시까지 글을 쓰다가 그래도 안 되면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 마감을 마저 했다. 그러고 나서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자마자 씻고 모자란 잠을 채우고 일어나 다시 출근하는, 그런 일상을 자주 반복했다.
이 생활을 1년 반가량 지속해보니, 평생 이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가족과의 삶, 건강한 삶, 여유로운 삶,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며칠 쉬고 온다고 해서 해결된 문제도 아니었다. 다시 업무에 복귀하면 그 고통스러웠던 강도대로 할 일에 숨이 턱 막혔다. 그렇다고 대충 쓰고 싶지도 않았다. 언제나 독자 앞에서 당당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늘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그러려면 가족, 건강, 나를 위한 시간을 포기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떠올려보니, 동료가 말하는 업무 강도 수준을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서비스를 좀 더 잘 만들고 싶은데 시간은 부족하고, 그러니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건 역시 가족, 건강, 자기 자신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개인의 삶을 포기해야만 한다면? 인풋보다는 아웃풋이 더 많다면? 당연히 금세 지쳐서 떨어져나가기에 십상이다.
반대로 회사를 우선시하는 기간이 한시적이며, 그 이후에는 충분한 시간적 보상이 있다면 어떨지 한 번 상상해봤다. 조직 안에서 그 성과를 인정받고 성장하고 싶은 직업인으로의 삶은 물론, 자식, 부모, 배우자로서의 삶, 자기 자신을 돌보는 삶을 사는 게 모두 가능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자비스앤빌런즈가 매년 5월 이후 워케이션을 전사적으로 장려하는 이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4월 말부터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정말 바빴습니다. 새벽 3, 4시까지 작업하다가 아침에 겨우 눈떠서 출근하는 일상의 반복이었죠. 그래서 집에서 컴퓨터나 핸드폰을 잠깐이라도 만지면 아내가 또 일하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족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주도 한 달 워케이션은 우리 가족에게 확실한 보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예쁜 아기를 데리고 와서 좋은 추억을 쌓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아내한테도 5월에 잃었던 점수를 다시 딸 수 있었습니다.”
“이번 한 달 유럽 워케이션 와서 퇴사 후 여행하러 온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지칠대로 지쳐버려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도전해 볼 힘이 더는 남지 않았던 게 퇴사의 이유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일에서 벗어났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큰 해방감을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데서 불안감을 느꼈다고 해요. 유럽에 와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도 비축하고, 일도 하면서 월급도 받고, 여행 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건 저밖에 없었어요. 다들 굉장히 부러워하더라고요.”
“‘헤드룸’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피사체의 머리 위와 화면 상단 간의 여백을 가리키는 말이죠. 적당한 헤드룸이 있어야 이를 보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며 피사체의 눈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도 적당한 헤드룸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한다면, 정작 본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를 해야 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자비스앤빌런즈의 워케이션이 바로 헤드룸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행’이 아닌 ‘회고’와 ‘계획’성 업무를 장려함으로써 서로 간 느슨한 연결을 통해 생기는 여유를 즐겨보자는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죠. 이런 일은 집 또는 회사에서도 충분히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라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연과 함께하면 더 좋다고 봐요. 자연 속에 2시간 이상 있으면 창의력이 샘솟는다고 합니다. 휴양지에서 일하거나 쉬는 걸 장려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앞서 설명한 대로, 내 이직 사유 중 하나는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매년 워케이션을 통해 그 여유를 되찾고 글을 계속 생산해낼 힘을 비축한다면, 회사를 계속 힘내서 다닐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워케이션은 일종의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는 힘인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시간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워케이션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멋진 자연 풍경을 앞에 두고서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32인치 모니터 없이 16인치 노트북만 가지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건물만 내려다 보이는 사무실과 집이 아닌,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서 일하는 게 정말 힐링이 될 수 있을까? 잦은 인터럽트가 업무 몰입도를 방해하면 어쩌지? 아침과 밤에 일하고 낮에 여행할 체력이 될까?
이 모든 의문을 해소하며 회사가 원하는 헤드룸을 만들 수 있었는지, 그리고 기대한 바대로 세 마리 토끼(휴양지 한달살이, 가족, 휴식)를 확실히 잡았는지는 워케이션 후기 글에서 상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글 | 이수경
코멘트 | 위영종, 강인석, 김성신, 김준민, 박혜빈, 서동우, 이시영, 김정훈
감수 | 황재홍
일러스트 |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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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입사 1년 미만에는 1개월 개근 시 1일의 유급 휴가를 받을 수 있다. 그 이후부터는 매년 15일의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다.
일이 많은 주(일)의 근로 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일)의 근로 시간을 줄여 평균 근로 시간을 주 40시간에 맞춰서 일하는 방식
항공료 213만 원, 숙박비 317만 원, 통신비 6만 원, 액티비티 60만 원, 현지 생활비 230만 원을 기준으로 삼았다.
2022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보도자료(2022-05), 통계청
10명 중 9.7명 “올해는 여름휴가 간다”…전년比 21.1%p↑(2022-06),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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